홍이지(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올해의 작가상은 국립현대미술관과 SBS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작가 후원 프로그램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가능성과 비전 그리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작가들을 지원하는 시상제도이다. 매해 후원 작가 4인을 선정해 신작 제작과 전시 기회를 제공하면서 해마다 시의적 주제와 새로운 담론을 발굴하는 등 동시대 한국미술의 지형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올해의 작가상 2021⟫은 회화, 영상, 설치, 사운드 등 다양한 매체와 주제를 선보이며 국내외에서 예술적 역량을 인정받고 있는 김상진, 방정아, 오민, 최찬숙을 후원 작가로 선정했다.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꾸준히 탐구해온 김상진은 급격한 기술 발전에 따라 인간과 사회를 대하는 우리의 관점이 점점 변하는 현실을 시각화한 영상,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일상 이면을 포착하는 데 관심이 큰 방정아는 대형 회화 작품을 통해 우리 주변의 일상적 장면과 ‘지금, 여기’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권력과 사회정치적 풍경, 그리고 이면에 감춰진 또 다른 현실의 모습을 들춘다. 영상, 음악, 퍼포먼스 등 매체의 기존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감각의 영역을 구축해 온 오민은 시간의 속성을 오래 연구해 왔다. 작가는 빛, 카메라, 신체, 공간을 아우르는 공연의 구성 요소들을 그와는 이질적인 공간에 펼치고 관람객이 감각하게 되는 동시적 순간에 질문을 던진다. 마지막으로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찬숙은 자신이 줄곧 탐구해온 이동과 이주, 그리고 기억에 관한 주제를 과거의 사건, 기록, 기억의 서사를 활용해 대형 영상 설치, 사운드 작품으로 전시장에 펼쳐 놓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재난의 시대를 관통하며 현실을 재인식하고 변화한 태도를 작품에 반영해온 작가들의 새로운 면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올해의 작가상 최종 수상자 1인은 전시 기간 중 심사를 통해 선정한다. ⟪올해의 작가상 2021⟫이 동시대 한국 현대미술의 미학적인 성취를 심도있게 살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활용해 ‘인간과 세계’란 주제를 동시대적 관점에서 다뤄온 김상진은 대형 영상 설치 작품과 사운드, 조각 작품으로 구성한 ‘비디오 게임 속 램프는 진짜 전기를 소비한다’를 선보인다. ‘비디오 게임 속 램프는 진짜 전기를 소비한다’는 작가가 꾸준하게 연구해 온 인간의 인식체계에 대한 의구심과 불완전성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고 새로운 가상 세계를 탐색해보라고 제안한다. 작가는 현실의 부조리함에 의구심을 품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 현실을 시각화한 작업을 통해 동시대 예술의 현재를 조명한다.
김상진은 이번 전시에서 자신이 오래 탐구해 온 ‘인간과 세계’란 주제를 실제와 가상의 경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역설적인 모습을 통해 전달한다. 전시장 중앙에 위치한 신작 <로파이 마니페스토_클라우드 플렉스>(2021)는 경이로운 순간으로 구축되는 하이파이로서의 가상이 아닌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우리네 현실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크로마 키 그린>(2021)은 오늘날 초록색이 지니는 이중적 속성을 꼬집는 작품이다. 도시와 사회라는 인공적 환경에서 자연성을 상징하는 의미를 지니는 초록색과 영상 제작 과정에서 컴퓨터 그래픽 작업의 편의를 위해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로서의 초록색의 역설에 주목했다. 작가는 소셜미디어나 가상화폐, 메타버스 등을 비롯해 각종 가상의 디지털 경험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과 모습을 전시라는 유기적 경험의 공간에 구축한다.
방정아는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회화 작품을 통해 ‘지금, 여기’를 지속적으로 이야기했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적이고 친숙한 동시대 풍경을 화폭에 옮기며 우리가 살아가는 장소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방정아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 주변의 일상적 장소와 일상에 드러나지 않던 이야기와 사건을 소재로 이를 관통하는 시간과 역사의 흐름이 만나게 되는 매개체로서의 회화 작품을 제안한다. 그 이면에 있어 알기 어려웠던 과거의 시간과 위기를 가시화함으로써 우리 주변과 삶을 다시금 바라보기를 제안한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흐물흐물’이란 주제를 선정하고 체제, 제도, 관계, 권력 같은 견고한 대상의 모습을 담은 ‘한국의 정치 풍경’ 섹션과 무너져서는 안 되는 생태계 모습을 투영한 ‘플라스틱 생태계’ 섹션 두 공간을 소개한다. 하나의 주제이지만 섹션마다 이야기하는 현상은 다르다.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풍경이자 복잡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대형 회화 작품으로 선보이고, 관객을 자신의 ‘지금, 여기’로 편입시켜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과 시선을 공유한다. 방정아는 ‘흐물흐물’을 통해 주변에 존재하는 위기의식과 드러나지 않은 현실을 마주하라고 말을 건넨다. 그리고 여러 회화 작품에서 ‘흐물흐물’이 함의하는 다양한 관점, 그리고 개인과 거대한 권력 사이에서 발생하는 위기감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간다.
오민은 음악, 사운드,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시간의 속성과 성질을 실험하는 데 관심이 크다. 작가는 감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시간에 대해 탐구하고자 공연 예술과 시각 예술에서의 시간성과 움직임, 빛의 성질을 연구하고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균열, 완전과 모순 사이를 횡단하는 신체적 사유를 파고든다. 시간의 통제, 구조, 조형적 실험을 통한 새로운 방법론을 발전시켜 온 오민은 신작 <헤테로크로니의 헤테로포니>(2021)를 통해 시간을 재료와 형식으로 구성하고 시간 예술이 발생시키는 이미지와 관계에 관한 질문을 여러 각도에서 던진다. 작가에게 있어 작품의 형식과 구조는 완벽한 통제와 탐구를 통해 구성되는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뿐만 아니라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도구로 작동한다.
이번 전시 ‘헤테로포니’는 5개의 화면과 사운드 설치 작업으로 구성된다. 이로써 이미지와 소리뿐만 아니라 빛과 신체 그리고 동시적 순간의 공감각적인 경험을 제안한다. ‘헤테로포니’는 다성 음악의 일종으로 하나의 선율을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연주할 때 원래의 선율과 그것을 달리한 선율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를 말하는 음악 용어다. 작가는 전시장에서 관람객이 어떤 경로로 움직이고 이미지를 경험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시각 예술에서 재료와 형식이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질문한다. 전시 공간이 한 편의 공연 무대이자 실험실이 되는 셈이다. 이곳에서 관람객은 각자의 시간을 보내지만 한편으로는 한 공간에 여러 명이 동시간을 감각하고 사유하며 헤테로포니적 순간을 경험한다.
이주, 이동, 공동체를 주제로 시각언어를 꾸준히 구축해 온 최찬숙은 자신의 위치와 존재에 관한 다양한 시선과 이야기를 여러 형식을 통해 선보였다. 작가는 오래 이주 생활을 하며 정신적 이주와 물리적 이주에 관해 ‘땅과 터전’을 기반으로 한 토지 소유 문제에 관심을 키워왔다. 최찬숙은 작품 <60호>(2020)에서 군사 경계지역에 위치한 선전용 마을 양지리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장소에 떠도는 이야기와 소유를 둘러싼 관계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신작 <qbit to adam>(2021)에서는 우리가 발로 딛고 있는 땅과 몸, 그리고 소유에 대한 작가의 오랜 성찰을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최찬숙은 지금껏 몰두해온 밀려난 사람들과 남겨진 이야기들이란 주제에서 한 걸음 나아가 개인의 기억과 역사를 이루는 땅과 몸 자체를 바라보고자 한다. 과거 광산 채굴에서 오늘날 가상화폐를 위한 채굴에 이르는 인간의 노동과 물질 소유의 역사를 파헤치는 것을 시작으로 신작 <qbit to adam>은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상과 사운드를 통해 인물들이 발생시키는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3채널 영상 속 서로 다른 서사가 공간에서 합쳐지고 분리되면서 서로간의 관계는 재정립되고, 동시에 2전시실의 바닥 전체에 설치된 구리빛 표면에 투영되어 보는 이에게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마련한다. 작가는 우리 앞에 있는 가상 공간과 시스템이 기존의 서사와 어떻게 만나 물리적인 감각을 일으키는지, 이러한 공간에서 새롭게 감지되는 감각과 존재는 무엇인지에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