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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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얕은 물, 알 수 없는 깊이
Name 강선학
방정아 개인전 2011.10.21-11.20 아리랑 갤러리 
얕은 물, 알 수 없는 깊이 


방정아의 이번 작품에는 물이 많이 등장한다. 물이야 태종대를 그리거나 물가를 그릴 때가 많았던 그에게 색다른 소재는 아니다. 그 시기의 물은 생활이나 등장하는 인물의 장소성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작품들에는 물이 다소 관념적이고 엉뚱하다. 물이 가진 근원적 상징이나 다의적 의미를 노리는 것도 아니다. 얕은 물이지만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함, 혹은 알 수 없는 불안 등의 정황으로 다가온다. 물과 더불어 그가 주로 관심을 가지는 여자들도 일상의 여자들이 아니라 독특한 옷과 표정과 제스처를 취한다. 기묘한 상황을 연출하는 그런 쪽이다. 수류관음보살상을 변형한 인물들이거나 멍한 눈으로 물가에 서 있는 형용들이 그렇다. 

저수조 계단인지 인위적 수로를 낸 계단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앞에서 관자놀이에 손을 대고 기대앉은 여인은 영락없는 관음의 형상이고,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삼고 옥상난간에 걸터앉은 여인도 수인으로 봐서 관음의 응신이다. 소대가리, 닭대가리, 돼지 대가리를 손에 들고 있는 머리 없는 관음상도 배경의 물로 봐서 수류관음상이다. 종교적 도상은 너무 깊이 생활화되어 관념이라 하기보다 일상의 다른 어법이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을 두고 관념이라 하는 일이 마뜩찮다. 그러나 이들이 서 있는 곳, 배경으로 보이는 현실경과의 연관으로 봐서 엉뚱하고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그것조차 관념적이다. 一切時(일체시) 一切處(일체처)에 있는 것이 관음의 응신이라, 그리 생각해서 가능한 상황일까. 어디론가 급하게 달려가는 관음상은 또 무엇인가.

시멘트 계단식으로 정비된 수로에서 머리를 감고 있는 여인이나 겨울 점퍼를 입고 방한장갑을 낀 채 종아리까지 물이 찬 개울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엉뚱하고 불안하기조차 하다. 머리를 감아야 할 곳도 들어서야 할 개울도 아니다. 그런 곳에 배치된 여인의 정황은 이해 불가능한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천정 구조로 봐서 동물원이나 식물원 같은 곳에 조성된 개울가다. 그곳 바위에 의지한 채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려는 여인의 모습은 이채롭고 위험하게 보인다. 게다가 여인이 개울에 손을 담그려 하는데 물속에서 손이 나와 그녀의 손을 잡아 채듯 하지 않은가. 점입가경, 그녀 뒤로 지척의 거리에 호랑이 한 마리가 물가에 서성거리는 모습으로 잡혀 있다. 열대성 나무가 보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초들이 무성한 주위에도 불구하고 여인과 호랑이의 등장은 현실감이 없다. 
같은 상황의 또 다른 실내장면이다. 석조기둥과 테라스가 있는 정원이다. 테라스 아래로 녹색 물이 흐르고 그 물 속에 여인이 서 있다. 무릎을 넘어서는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여인의 표정은 무표정하다. 그리고 그 뒤 바싹 붙어선 거리에 호랑이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다. 물속에 서 있는 여인의 표정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초점이 없는 눈동자로 서 있을 뿐이다. 
급박한 상황인 것 같은데 그녀들은 이런 상황에 아랑곳 않고 그저 그렇게 서 있다. 그리고 이런 정황에 대한 어떤 설명도 정합성도 화면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초현실적이라 하기에는 현실적 배치에 치중했고, 현실에 충실하면서 어딘가 한 곳이 그곳에서 벗어나 있다. 때로 꿈같기도 하고, 환상 같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조성된 유토피아로 보기에는 턱없이 힘든 장면이다. 

물은 인간에게 필요부가결한 것이지만 때로 易理(역리)의 해석으로 殺(살)로 읽힌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불안, 곁에 있지만 알 수 없는 위험을 드러내는 것일까. 방정아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현실 이야기는 여기서는 찾아볼 수 없다. 소재들의 이해하기 힘든 병치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설명 불가능한 장면을 우리에게 던져준다.. 

천정의 샹들리에 전등의 화사한 이오니아식 문양의 선구조와 장식들이 먼저 눈에 띤다. 그 아래로 붙어서 창틀이 많은 대형 유리창이 보인다. 그 창밖으로는 넘칠 듯 파도가 일어난다. 시선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리고 급하게 시선이 방안으로 되돌아 나오면 방 중앙에 놓인 대형침대 두 개에 가 닿는다. 구겨진 침대시트가 유난히 눈에 띄고 창밖의 파도가 여기서 반복되고 있는 듯하다. 푸르고 거칠게 흐트러진 시트는 파도처럼 일렁이고 포말의 급박한 움직임을 재현한다. 거울에 비친 파도를 보는 듯하다. 
방 양 벽으로 놓인 이층 침대에는 느긋하게 눕거나 앉거나 기댄 여인들이 무관한 듯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러나 어딘가 어색한 앉음새다. 그들이 덥고 있는 침대시트 역시 푸르고 구겨져 있다. 방 안에 앉아 있는 데도 불구하고 파도와 감각적 연계를 보인다. 창가로 향한 시선이 침대로 갔다 다시 돌아 나오면 바닥의 지그재그 문양과 창가로 향한 천정의 사선이 방의 구조를 잡고 있다. 단축법이 드러나는 공간은 창을 마주하면서 시선이 멈춘다. 한 벽면을 차지한 유리창 앞에서 평면을 만난다. 방안과 밖의 경계, 평면과 입체가 만나는 그 멈춤, 그 유리창 밖에서는 또 한 번 파도가 가득 찬다. 

같은 방 같은데 몇 가지 소품들이 다르다. 이층 침대 위 칸에 누운 여인을 보다 경악의 순간을 맞는다. 맞은편 아래 칸 침대에 호랑이 한 마리가 배를 깔고 누웠지 않은가. 위기상황이라 하기에는 이 정황이 너무 천연덕스럽다. 이런 상황을 급박함, 의지와 무관한 불안 등으로 읽기에는 너무 상투적이다. 그러면 그가 막상 제기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무엇을 읽기 바라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읽을 수 있을까. 그런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깨고 나면 제자리로 돌아올 꿈의 한 장면일까. 

그의 이 작품들은 현실 같은데 어딘가 틀어져서 장소를 벗어나 있고, 현재의 어느 순간이 비틀린 시간으로 제시된다. 환상이거나 꿈같다는 인상은 그런 것에 연유한다. 방정아의 스타일이나 내용으로 봐서 이 작품들은 일상의 반전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사물이나 정황의 병치는 ‘기리꼬’나 ‘달리’ ‘에른스트’를 생각하게 하지만 초현실주의의 감화나 영향이라 보기에는 어딘가 석연찮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얕은 물의 깊이, 잴 수 없는 하찮은 것들의 깊이를 보아내거나 경악하면서 느끼는 온전한 것의 접면에 대한 경험이 아닐까. 이 엉뚱하고 우발적인 현실 앞에서, 그것이야말로 현실이라는 것이다. 부조리한 것들이 엄연한 현실로 드러나는 그런 순간의 경험. 

이런 작품 사이에 그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일상의 표정들, 일상에서 얻어내는 삶의 신고와 냉소, 혹은 해학적 어투를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스포츠 댄스 강습인가. 겨우 들어설 수 있을 듯 한 좁은 공간에 남녀가 붙어서 있다. 조금 거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게 손을 잡고 몸을 돌리고 하기에 너무 좁은 듯하다. 천정의 알록달록한 문양이나 남자 상의의 무늬는 어딘가 겉돌고 부화하기만 하다. 
붉은 바닥에 회색 천정, 넑고 긴 창, 벽면에 따라 놓인 헬스기구들, 역기를 들려고 허리를 숙인 남자의 벗은 등, 짧은 바지, 분홍색 실내운동화, 이두박근을 단련하는 기구를 당기고 있는 당당한 체구의 남자, 허벅지 근육을 올리는 기구에 반쯤 들어난 허벅지, 알 수 없는 별도 공간 안에서 줄을 당기는 남자, 헬스장 안 정경이다. 그런 그들 사이에 덜렁, 검은 모자에 검은 옷을 입고 겨드랑이에 핸드백을 바짝 당겨 붙이고 하이힐을 신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여자의 모습, 그것은 아무리 봐도 느닷없는 장면이다. 이 느닷없는 순간, 어색함이 보여주는 그런 것이 때로 현실을 읽는 방정아의 태도이다. 

짙은 안개에 아랫도리가 묻힌 채 상의 주머니에 손을 깊이 찌르고 서 있는 여인의 모습에는 불현듯 그 곳에 있는 스스로를 목격한다. 그러나 어떤 설득력 있는 정황도 제시되지 않은 채 그녀 뒤로 공장, 주택, 아파트들이 희미하게 드러난다. 파헤쳐져 이미 쓸 수 없게 된 밭고랑 같은 빈 터가 앞에 펼쳐지고 우리가 만나는 것은 안개 속에서 흘깃 보이고야마는 흰옷자락이다. 그녀가 만나는 것은 이런 세계가 아닌가. 

현실 같은데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의 정합성을 잃은 상황이 이번 전시 전체를 이끌고 있다. 이 비정합성의 현실재현은 방정아의 현실이해나 인식의 새로운 장면이다. 그리고 붓자국이 분명하게 드러나게 인물을 묘사함으로써 얻어지는 미묘한 심리적 정황보다 면으로 처리하는 방법상의 차이도 변화의 하나이다. 터치보다 면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 작품은 그의 변화를 더 살펴봐야 할 것으로 남긴다. 
그러나 사실과 연출 사이의 미묘한 물음에 현실이 있고, 상가 구석에 번성하는 스포츠 댄스에 일탈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지 않은가. 그녀들이 발을 담그고 있는 얕은 물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현실의 다른 쪽이 아닐까. 
강 선 학(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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