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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국제신문
Name 강필희 기자
평온한 컬러 위 덧칠된 위트와 유머 
방정아 '여행스케치' 개인전 
美와 멕시코 여행하며 현지서 작업한 20점 전시 
한인 유학생… 인디언의 고통… 소외받은 소수민족 삶 그려 



화가 방정아가 미국과 멕시코를 여행하며 그린 스케치전을 8일부터 연다. 사진은 미국 여성 노숙자의 모습을 포착한 '숙자 할머니'. 

삶의 편린 속에서 그 본질을 예리하게 집어내는 재능이 남다른 방정아(여·42) 작가가 열두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아메리카-방정아의 여행스케치'이다. 작가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미국 서남부 3개주(캘리포니아 네바다 애리조나)와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현지에서 작업한 작품 20점이 걸린다. 모두 10호 안팎의 소품들이다. 이 그림은 작가의 짤막한 단상과 함께 본지 오피니언면(2009년 9월~2010년 1월)에 소개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작은 화면에 서사를 압축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업은 제게 작은 발전의 계기가 됐다고도 봅니다." 

여행스케치라지만 단순한 풍경화와는 거리가 있다. 한국의 조기유학생, 이민 1세대, 미국 인디언과 소수민족의 삶이 자주 등장한다. 그렇다고 묵직한 이데올로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가 처한 비극적 상황과 모순을 '폭로'하지만 공격적이지 않다. 강렬한 원색과 미색이 골고루 섞인 화면에는 위트와 유머가 숨어있다. 어쩌면 그래서 페이소스가 더욱 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체류했던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길가 풀밭에 앉아있는 한 여인을 그린 그림을 보자. 피부가 까맣게 그을린 이 은발의 여인은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한가로이 앉아 스프링클러에서 나오는 물줄기로 장난을 치고 있다. 미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여성 노숙자의 모습을 포착한 것이다. 세상과의 소통은 단절했지만 물방울에게만은 다정하게 손을 내민 이 장면에 '숙자 할머니'라는 제목이 붙었다. 

샌디에이고 집 주변에서 작가와 자주 마주친 한인 유학생도 그림으로 남았다. 검게 그을린 장딴지를 내놓고 후드점퍼와 반바지를 입은 채 빨래방에서 세탁물을 끄집어내고 있다. "중학생 쯤 돼 보이던데 말을 걸어도 대꾸를 안해요. 다른 학생들과 영어로 웃고 떠드는 것 보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기는 하던데. 제게도 아주 관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계속 주변을 맴돌았거든요." 제목이 '새끼 기러기'다. 애리조나주 투산의 한 숙박업소에서 일하는 한인 여성이 이불 빨래를 들고 의자에 멍하니 앉아있는 장면도 왠지 짠하다. 

작가가 무엇보다 천착한 소재는 한때 대륙의 주인이었다가 소수민족으로 밀려나버린 북미 인디언의 비극적인 삶이다. 조상이 물려준 터전을 빼앗기고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척박한 보호구역 안에서 술과 마약에 찌들어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DNA 한 조각' 'My Life is in Ruins'와 같은 작품 속에서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불안한 풍경'이라는 작품의 배경이 된 샌디에이고 포인트 로마는 16세기 스페인의 지원을 받은 탐험가 카브리요에 의해 캘리포니아가 처음 발견된 지점. 땅을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 치러진 전쟁과 원주민들의 고통이 고스란히 풍경 속에 묻어나고 있다고 작가는 그림 단상을 통해 말하면서 "지옥도의 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원색적인 표현을 쓰고 있다. 

결국 세상은 그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가진 문제의식의 깊이만큼 능동적으로 '보는 것'이다. 이런 작가를 사랑하는 팬이 많다. 드로잉 작품 콜렉터이자 '화골(畵骨)'이라는 에세이집을 내기도 한 김동화(정신과 전문의)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소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 특출합니다. 기법적으로는 키치(Kitsch·조악 저속함 등을 나타내는 미술용어)적이어서 처음엔 예쁘지 않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조차도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로서 효과적입니다. 자신이 가진 문제의식을 해학적이고 위트있게 표현하는 재주, 자꾸 씹다 보면 깊이가 느껴지는 쓴 맛. 바로 그것입니다." 부산시립미술관 김준기 학예연구사는 "당위를 역설하지 않으면서도 예술가로서 체험한 삶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따뜻하고 서정적이고 은유적인 그림"이라고 평했다. 전시는 8일부터 오는 21일까지 부산 수영구 광안2동 미광화랑. (051)758-2247 
강필희 기자 flut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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