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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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개인전 '아메리카' 전시 서문(김동화)
Name 김동화
방정아(方靖雅)의 <미국, 멕시코 여행 스케치> 전(展) 

김 동 화 (정신과 전문의) 

작년 9월부터 금년 1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작가가 국제신문에 기고했던 글 <방정아의 여행 스케치>에 실린 20점의 작품들을 모아, 미광화랑 전시회를 통해 한자리에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과거 천경자(千鏡子) 화백이 여행 중에 제작한 이국 풍물이 담긴 스케치 작품들을 서울의 현대화랑에서 전시한 예가 있기는 합니다만, 방정아의 이번 전시는 외국 기행으로서의 감상 또는 풍정(風情)을 보여준다는 단순한 사실 이상의 의미가 담긴, 뜻 깊은 전람회입니다. 

주지(周知)하시는 바대로, 그녀는 생활 주변에서 지금도 흔히 일어나고 있는 극히 무심하고 무표정한 일상의 단편(斷片)들로부터 그것들이 함의(含意)하고 있는 모순(矛盾)이나 애환(哀歡)을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센스로 예리하게 환기시켜, 이를 되풀이해 곱씹고 성찰해 보아야 하는 의미론(意味論)의 영역으로까지 전환시키는 작업을 오랜 시간 꾸준히 진행해 온 뚝심 있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작업에서는 거창한 이론보다는 구체적 생활상이, 관념의 추구보다는 현실에의 밀착이 그 미학의 토대로서 굳건히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관점을 드러내기 위해, 방법적으로는 기지(wit), 풍자(satire), 반어(irony) 등의 농밀(濃密)한 해학(humor)을, 기법적으로는 키치(kitsch)적 분위기의 색채를 차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내용적으로는 국외자(局外者, outsider)들에 대한 사려 깊고 따스한 배려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어린 공감이 뜨겁게 표현되어 있기도 합니다. 방정아의 이 같은 작업 방식과 내용은 1980년대 이래 오랜 세월 풍미해 온 민중미술 중심의 거대담론(巨大談論)의 시대가 지나가버린 우리의 현대미술사에서 새롭게 리얼리티(reality)의 문제를 다루는 독특한 방식을 제시하는, 일종의 대안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일편(一便)으로 경직되고 직정(直情)적인 측면만이 강조되어 왔던 민중미술의 미학적 결락(缺落)을 보완해 줄 수 있는 건강한 대안으로서의 양식(樣式)을 제시했다는 점이야말로, 향후 그녀의 미술사적 평가나 위치와도 무관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번 전람회에서 작가가 가장 밀도 있게 천착한 소재는 북미 인디언들의 비극적 실상입니다. 이나 는 과거 북미 대륙의 주역에서 이제는 소수자(minority)로 전락해버린 인디언들의 슬픈 현실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주해 온 백인들에게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술과 마약에 젖은 채 척박한 보호구역 안에서 가난하게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침략자들의 탐욕적이고 제국주의적인 행태가 평화롭게 살아가던 인디언 원주민들의 삶을 얼마나 처참하게 파괴하고 황폐화시켰는지를 인식할 수 있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 하나가 되어 서로 조화롭게 공존하며 살아 온 인디언 조상들의 삶의 방식이야말로 환경과 생태가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새롭게 주목해야 하는 지혜이자 가치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 내용들은 이번 여행 스케치가 단지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주유(周遊)나 신변잡기(身邊雜記)적 감상을 그려내는 차원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모순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낯선 이국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적확(的確)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전시를 통해 작가가 발언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 할 수 있겠습니다. 
몇 점의 작품들을 더 살펴보면, 에서는 대형 마트의 케쉬어(cashier)로 일하고 있는 흑인 여성과 히스페닉계 여성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숨쉬기가 힘들 정도의 심각한 비만에 시달리고 있는데, 사회경제적으로 저소득계층인 이들이 싸구려 정크 푸드(junk food)를 지속적으로 섭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비만의 가장 중요한 원인임을 작가는 공중(公衆)에 폭로하고 있습니다. 즉 작가는 관객들로 하여금 눈에 보이는 문제(비만) 이면에 있는, 개인적 차원(체중 관리 소홀)을 넘어선 사회구조적 맥락(경제수준과 음식섭취의 관계)을 발견하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훌륭한 의자, 불안한 여자>는 물가상승 때문에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허름한 숙박업소를 운영하는 한국인 이민 여성의 일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고된 노동으로 늘 피로에 시달리는 여관 주인은 여행자가 느끼는 마을의 색다른 분위기를 즐길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객실을 청소하면서 침대 시트를 양 손으로 감싸 안은 채 잠시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 삶의 무게에 지친 여인을 향한 작가의 연민이 화면 속에서 잘 포착되고 있습니다. 
<키친>은 재미있는 한편으로 가슴이 찡해지는 그림입니다. 호수 근처 숲에 있는 소나무의 표피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딱따구리에 의해 생긴 이 무수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싱싱하고 푸른 이파리를 힘차게 뻗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에 생긴 상처를 통해 딱따구리의 식사를 제공해주는 키친(kitchen) 같은 소나무의 모습은 자신을 희생하면서 타인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그러면서도 결코 자신의 생명력을 잃지 않는 어떤 존재에 대한 메타포로 읽힙니다. 수많은 학살과 침탈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인디언들의 모습이 이 나무와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신문 연재물의 마지막 작품인 는 이 연작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주변이 거대한 바위덩어리뿐인 깜깜한 도상(途上)을 달리고 있는 작은 차 속에서, 마침내 작가는 나그네를 위한 상점(商店)의 불빛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무섭고도 외로운, 어둡고도 부조리한 세상 속에도 희망의 불빛은 반드시 존재하리라는 소망을 작가는 이 연작의 결론으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번 전람회에 출품된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이미 탄탄하게 일구어진 그녀의 예술적 성과들의 특출한 일면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회화의 제재(題材)를 잡아내는 핀셋처럼 예민한 감각(pincette-like sensitivity), 사물의 표면과 이면을 아울러 볼 줄 아는 관찰자적 눈매(good observing eye), 소재로서의 대상에 대한 탁월한 공감능력(excellent empathic capacity), 복잡한 서사(敍事)를 한 컷의 화면으로 압축시키는 요약적 역량(simply summarizing power) 등과 같은 회화 특유의 진미(眞味)를 전시장에서 일차(一次) 음미해 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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