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tra Form
SubJect 2009개인전 서문
Name 김준기 미술평론가
살면서 그리면서 

방정아 그림의 매력은 그가 속해 있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지역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대부분의 경우 도시의 풍경과 삶의 정황을 드러내는 회화라면 당연히 그 속에는 특정 도시 고유의 느낌을 담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방정아의 그림 속에 드러나는 부산 이야기들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4백만 인구가 밀집해 있는 부산은 이미 많은 부분 거대도시 특유의 익명성을 띄고 있다. 어느 도시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익숙한 풍경과 사건과 장면들이 있다는 것이다. 방정아가 다루고 있는 것들도 대체로 그러한 범주 속에 포함된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지역성 드러내기란 의도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아닐 수도 있다. 겉으로 내세우지 않고도 은연중에 지역성을 드러내는 것이 방정아 그림의 특성이다. 

방정아의 구작 ‘고독함의 상쾌한 매력’(2001)에는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2층 양옥집 한 채가 등장한다. 물론 그 앞에는 마른 나무 한 그루와 봉고 차 한 대가 있고, 주변의 골목과 건물들도 삐죽이 보인다. 그러나 주인공은 2층 양옥집이다. 미색계열의 하늘색 또는 형광 빛 연녹색 페인트를 칠한 집이다. 시멘트 미장으로 마감한 회색 표면을 미화하기 위해서 칠하는 여러 색깔들 가운데 유독 이 색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통계 따위로는 해명할 수 없는 부산스러운 느낌 같은 것이다. 그것은 부산의 주택 건축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하나의 표상이다. 방정아의 그림이 재현회화의 일반적인 상투성으로 벗어나는 것은 이 그림에서와 같이 부산스러움을 포착하는 예민한 더듬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방정아가 도시의 스펙터클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는 거대도시 부산을 한눈에 포착하려고 하지 않는다. 도시의 풍경 전체를 내려다보면서 항도 부산이니 산동네 부산의 풍광을 분석하거나 해석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는 개관적인 관찰자 시점을 가지기 보다는 주관적 행위자의 시점으로 자신의 삶과 그 주변의 정황들을 포착하려 한다. 때때로 그는 멀리서 넓게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 좁게 부분을 들여다본다. 그는 갖가지 화분에 담겨 배달되는 식물들로 숲을 꾸미고 ‘이식된 숲’ 속에 낯설게 앉아있는 현대인의 모습을 배치하는 유머를 지녔다. 줄무늬 회색 닭을 ‘두려움’의 가장 두려운 존재로 내세우기도 하고, 뼈를 들고 있는 고고학 박사를 ‘뼈박사’로 명명하며 호들갑을 떠는가 하면, 치과 진열장에 늘어선 석고로 뜬 치아 모형들을 ‘웃는 이빨들’로 해석하는 느긋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는 사건이나 상황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 주변의 풍경이나 장면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룬다. 그것이 주택가 풍경이거나 아니면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본 계단이거나 아니면 습지나 바다와 같은 자연의 풍경일 때도 그에게는 사건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 전체의 정황을 꼼꼼하게 정리해서 보여준다. 예를 들자면 갈라진 시멘트 포장의 뒷마당과 시멘트 블록 담장의 회색을 다양한 색감으로 처리해내는 감성이 방정아가 말하려는 맹인 지압사의 (내일을 알 수 없는) 오늘의 즐거운 노동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이다. 삶터인 재개발지역을 기웃거리는 밤무대 가수 오동춘 씨나, 용두산 공원 언저리의 계단에 쓰러져있는 무명씨의 정황을 해명하는 것도 주인공 그 자체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주변의 풍경이다. 

방정아는 시각서사와 문학서사 두 영역을 꿰뚫는다. 음악과 문학의 접점에서 노래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방정아의 그림은 시각언어와 문자언어를 탁월한 차원에서 통합했을 얻을 수 있는 리얼리즘 회화의 핵심에 근접해 있다. 서사의 문제만이 아니다. 방정아 서사를 구축하는 것은 그가 다루는 소재나 주제의 이야기 구조와 더불어 그것을 다루는 스타일의 독특함이다. 우리가 방정아 그림을 통해서 방정아 내러티브에 공감해온 것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스타일 때문이다. 그것은 구상회화와 변별한 형상회화의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방정아 서사는 문학서사와는 차별화한 시각서사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의 문제이다. 방정아는 자신의 삶 자체와 그 주변의 정황들을 낱낱이 헤아리고 그 속에 뛰어드는 리얼리스트로서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농부에게 있어서 땅을 파는 것이 사는 것이듯이 화가 방정아에게 있어서 그리는 것은 사는 것이다. 리얼리즘 회화의 본질은 리얼한 회화 자체가 아니라 예술가의 리얼한 태도이다. 방정아는 살면서 그리고, 그리면서 산다. 

김준기 (미술평론가, www.gimjungi.net) 

  1.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전시풍경4

    Read More
  2.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전시풍경3

    Read More
  3.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전시풍경2

    Read More
  4.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전시풍경

    Read More
  5. No Image

    2017 개인전 서문(반이정 미술평론가)

    Read More
  6. 방정아 solo exhibition - 꽉 펑 헥 _ 자하미술관 오프닝

    Read More
  7. 방정아 solo exhibition - 꽉 펑 헥 _ 자하미술관 _ 2017.10.6 ~ 10.29

    Read More
  8. Korea•Myamar new wave exchange exhibition - 2017 한.아세안 문화교류의 해 기념 ‘한․미얀마 현대미술교류전

    Read More
  9. 2017 미디어아트 상영회_부산 영화의 전당 인디플러스

    Read More
  10. [부산일보] 5월에 다시 묻는 '어머니'라는 존재

    Read More
  11. 작가 방정아 - 문화산책 4월 27일 방송 - 두 엄마 신세계 갤러리 센텀시티편

    Read More
  12. [국제신문] '두 엄마'가 그린 우리 사회의 대안, 여성

    Read More
  13. 두 엄마 - 윤석남_방정아 2인展

    Read More
  14. 2017.01.06_핵몽_인디아트홀 공_서울

    Read More
  15. 2017.01.05_핵몽_인디아트홀 공 작품 설치

    Read More
  16. '핵몽'전 _ 지앤갤러리 G&Gallery _ 울산

    Read More
  17. [단체전-전시뷰] 핵核몽夢_가톨릭센터 대청 갤러리 부산_2016.11.10~2016.11.30

    Read More
  18. [OhmyNews] 냄새도 없고, 볼 수도 없고...곁에 악마가 있다

    Read More
  19. KBS 문화산책 - 지역문화인물 - 화가 방정아

    Read More
  20. [개인전] 이야기 전 _ 부산 공간화랑 _ 2016.10.7 ~ 2016.10.1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