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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터넷상에는 아티스트가 아닌 일반인들이 만든 수많은 시각이미지가 게시되고 있다. 그 활기의 중심에는 자유로운 소통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이에 비해 흔히 인터넷 바깥에서의 미술은 영화나 음악에 비해 낯선 것, 고급스러운 것, 가까이 하기엔 좀 먼 이미지로 고착화돼 있다. 물론 간혹 인기 있는 대형전시가 열릴 때는 미술관에도 줄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하지만 그 외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갤러리 전시의 경우 일부 미술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머물 뿐이다.


인터넷에서 만나는 21세기 민화


영화에 이어 '제9의 예술'로 등장한 만화는 인터넷 상에서 웹툰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스토리성이 강조되는 만화는 사진, 영화와 마찬가지로 현 시각매체문화의 한 축을 이룬다. 젊은 세대들은 인터넷 접속을 하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웹툰을 즐기고 있다. 웹툰의 내용이 이미 시대 정서를 대변하는 주요 문화생산물이 되었다. 스타 웹툰 작가도 있지만 적지 않은 일반인들도 웹툰 작업을 시도한다.


그 나름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조선후기 미술영역 중에 민화가 있다. 민화의 특성인 익명성과 비전문성은 전문 예술가들의 영역과는 별개로 그 시대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게 했다. 스스로 전문가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스스럼없이 시대적 욕망을 표현했다. 그 기법이 서투르고 독창성이 결여되었어도 별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익명성과 비전문성은 인터넷 문화에서 자주 오르내리는 단어들이다. 근래 새롭게 등장한 SNS에 의해 개인 발언권이 자연스러워졌다. 개인 갤러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개인 블로그나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들을 함께 공유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적극적인 소통방식은 이미 익숙해진 새로운 미술 감상 형태다.


같은 IP 주소로 동시 접속해서 한 화면에 함께 그림을 그리는 프로그램과 아마추어 미술인 웹사이트는 청소년 세대에서 많은 지지를 얻고 있다. 또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통해 함께 작품을 감상하고 감상평을 나누기도 하고, 웹상에서 그룹으로 함께 전시를 열기도 한다. 물론 실제 작품이 아닌 촬영된 이미지들을 보는 것은 많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루브르 미술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갤러리들을 다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력이 있다고 문화를 제대로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에 대한 인식과 공감의 능력을 확장시키는 데에는 무엇보다 많은 작품 감상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한 문화 접촉의 방법은 문화공간에서의 전시나 교육과 같은 오프라인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온라인에 의해 실현될 수 있다. 더군다나 온라인은 지역이라는 공간의 폐쇄성을 뛰어넘는 공유라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활자 발명은 서양문화 전반을 흔들어 놓았다. 필사본으로만 유통되던 성경이나 저작물을 시민도 직접 대량인쇄물로 읽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지배층에게 독점되어 있었던 지식과 정보의 곳간이 열림을 의미했다. 결과적으로 미술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르네상스도 이를 통해 가능하였다. 항상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으로부터 강한 배타와 거부를 당한다. 새로 치고 올라오는 것에 대한 기존 관념들의 거부감은 자연스럽지만 결국 어쩔 수 없이 또 새로운 것과 함께 나아가거나 잠식당한다.


지속적인 문화 공유 가능한 인터넷


이렇게 말하는 나조차도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미술 문화에는 아직 소극적이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비전문 미술가들의 공유 방식도 훌륭하고, 그들이 미술 문화의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작품가격과 별 상관없이 그야말로 자발적인 미술행위를 하고 있다. 그러한 웹 이미지들의 공유는 오히려 실제 작품에 대한 그리움과 가치를 올려줄지도 모른다.

어떠한 형태이든 새로운 문화들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다면 그 사회는 괜찮은 사회라고 본다. 그래서 21세기 우리 문화의 한 축으로서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시각이미지들의 향연들을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