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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2017 개인전 서문(반이정 미술평론가)
자기분열 세대의 자화상


반이정 미술평론가 

<내게 말건 여자> <흘러내리는 것> <검은 바다>. 올해(2017년) 완성했다는 이 세 작품에서 공통된 미적 태도를 읽기란 어렵다. 사전 설명을 듣지 않고선 같은 작가의 것이라고 파악하기도 어렵다. 현실에서 벌어진 체험을 고스란히 제목으로 쓴 <내게 말건 여자>에선 <집나온 여자>(1996)처럼 1990년대 일상 리얼리즘과 상통하는 것 같고, 원자력 발전소라는 사회 문제에 주목한 <흘러내리는 것>에선 미시적이나마 뉴스에서 접한 사건의 인상을 정리한 <변심한 동거녀에 앙심 품고>(2001)를 용케 떠올릴 수 있지만, <검은 바다>에선 방정아의 과거 브랜드와 유사한 무엇을 찾기조차 통 어렵다. 

2016년 하반기부터 2017년까지 완성한 작품을 모아놓은 방정아의 신작 개인전은 윤곽선을 살린 인물 캐릭터와 흡사 태블릿피시로 그린 것처럼 평면적인 화면 구성, 크레파스라는 매체의 훈훈함을 함께 주는 표현주의적인 드로잉, 19세기 점묘파적 묘법에 이어 연탄과 오공본드와 물을 섞은 재료 실험까지 다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1990년대 중후반의 방정아를 구성하는 브랜드의 일부가 파편화되고 분열적으로 나타난 모습이기도 하다. 20여년 전 방정아는 원근감을 왜곡시킨 화면 구성, 표현주의적인 붓질과 색채 사용, 자기의 주변부 삶을 관찰한 일상 리얼리즘으로 자기 브랜드를 만들었다. 

20년이라는 시차는 미술인에게도 변화의 압박을 줬으며, 사회참여형 미술인이 받는 압박의 크기는 훨씬 큰 것이었다. 정치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를 재현 주제로 삼아왔던 사회참여형 미술은 그들이 표적으로 삼아왔던 구조적 부조리가 무너지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세상이 등장하자, 익숙하게 다뤄온 재현 주제까지 함께 상실했으며 실제로 많은 사회참여형 미술인들이 이 무렵 길을 잃은 채 구시대 인사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 무렵 방정아 스타일의 사회참여형 미술이란 구조적 부조리보다 삶의 주변부에서 숨겨진 주제를 발견하는 일상 미학에 가까웠다. 방정아는 일상에 잠재된 어두운 그림자를 화폭에 우화적으로 옮기면서 주목을 받은 경우다. 가정폭력으로 멍든 살을 숨기려고 사람 없는 시간에 공중목욕탕을 찾는 장년 여성, 가사노동이 만든 주름살을 훈장처럼 피부에 새긴 가정주부의 알몸. 여자 주인공이 많이 등장하는 방정아의 그림은 1세대 민중미술과 동일선상에 있되, 실제 삶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춘 ‘사회참여’인 점에서 2000년 전후 출현한 탈정치적인 일상 미술과도 교집합이 있다.   

이번 신작에서 보이는 다변화된 스타일은 1990년대의 자기 스타일과 결별을 고민한 듯한 10여년부터 출현하기 시작했다. 비현실적인 스토리텔링, 원색의 평면적인 색면을 강조한 화면 구성, 가늘거나 굵은 선으로 마감하는 인물 캐릭터 등등. 대략 2010년 이후 2017년 신작까지 1990년대의 자기 브랜드의 일면이 관찰되기도 한다. 여자 주인공을 앞세운 ‘자기중심적인’ 스토리텔링, 삶의 주변부 체험에서 가져온 주제, 그리고 ‘사회참여형’의 기질이 그렇다. 고리 원자력발전소를 바라보는 방정아의 관심은 이번 개인전을 구성하는 한 축이라고 단언해도 될 만큼 비중이 크다. 그럼에도 작가의 진술을 듣기 전까지는 고리 원전에 대한 분노가 묻어있는 그림을 골라내기란 어렵다. 요컨대 <흘러내리는 것>에서 유전자 변형 동물에 대한 우려를 읽기란 어렵다. 

1990년대 주변부라는 미시적인 삶에서 주제를 발견한 방정아의 사회참여형 미의식은 이제는 오히려 사회문제라는 거시적인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더 큰 사회 문제로 옮겨간 주제의 변화는 역설적으로 작가에게 무력감을 주기도 했을 게다. 2017년 신작에 포함된 고리 원전 문제, 박근혜-최순실 사태, 세월호 참사는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를 이미 넘어서는 것이다. 신작에서 이런 구조적인 사회문제는 표면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길쭉한 네 발 짐승을 묘사한 <흘러내리는 것>이나 해변가에서 남자와 포옹하는 억센 여자를 담은 <꽉>에서 고리원전의 심각성을 떠올리긴 어려우며,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비현실적인 두 여성의 마주봄을 묘사한 <기묘한 대화>에서 박근혜-최순실을 발견하기도 쉽지 않고, <희미해져가는>에서 세월호를 연상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고리원전, 박근혜-최순실, 세월호. 이처럼 선명하고 구체적인 정치사회 이슈들을 보일 듯 말 듯 재현한 작가의 의중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방정아의 그림에 소환된 이 셋은 방정아라는 일개인이 미술이라는 자기에게 익숙한 도구로 대처할 수 없는 초대형 사건에 가깝다. 때문에 보일 듯 말 듯 주제를 은폐시킨 이 ‘사회참여형’ 그림들은 그녀의 무력감을 재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2010년 이후 방정아는 어떤 세대가 체험하는 아주 오래된 상실감과 무력감을 재현하고 있다. 그 어떤 세대란 넓게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중반까지 거시적인 사회 문제를 재현해온 리얼리즘 미술일 수 있으며, 좁게는 1990년대 중후반 미시적인 주변부에서 익살스런 리얼리즘을 발견한 방정아 자신과 그녀와 비슷한 미감을 나눈 세대를 말한다. 

의태어와 의성어를 뒤섞어 만든 2017년 개인전 제목 <꽉. 펑. 헥>은 어떤 현상을 직접 발언하지 않고 다만 소리로만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어떤 구체적인 사태에 직설적인 재현으로 소통했던 어떤 세대가 그런 직설적인 방법론이 더는 통할 수 없게 된 시대를 만났을 때, 대안으로 택한 우회적인 방법론에 대한 풍자이기도 할 게다. 

2017년 개인전에 출품된 작업들에 단속적인 여러 주제들이 뒤섞인 점, 그럼에도 여전한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이 스며있는 점, 나아가 자기 자신에 관심을 포기하지 못하는 점, 다종다양한 매체 실험을 통해 과거와 결별하려고 하는 점. 이 모두는 자기 분열을 체험한 방정아 세대 또는 방정아의 방황하는 자기 자화상으로 보인다. 냉전이 끝난 후 밀어닥친 후기구조주의 시대에 널리 유행한 경구는 이렇다.  "당신이 소통하려는 바가 바로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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