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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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미술 들여다보기(부산일보 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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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준
부산미술 들여다보기] 가벼운(?) 그림 
2000/03/02 


한국 현대미술이 너무 어렵고 무겁다고들한다.서구회화의 논리와 동양의 사유체계가,현실과 이데올로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있으며 과거의 전통이 또 다른 강박으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무겁게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문제는 진지함과 무거움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가벼운 것"에 대한 가치절하는 크고 거대한 것만을 꿈꿔왔던 근대주의적인 가치질서에서 비롯됐다. 

이런 질서는 대중들에게 미술은 거창하고 심오한 그 무엇이라는 생각을 고착화시켰고 결국 민주적인 소통과 참여를 가로막아 왔다.하지만 최근들어 이런 생각들은 상당히 붕괴되고 있다.지난주 끝난 김정명과 방정아의 개인전은 최근의 추세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들이다. 

김정명은 조각과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유로운 조형세계를 구축해온 작가. 

진지함과 무거움을 강요받던 시절부터 그는 뱃심좋게 가벼움과 유연함으로 승부를 걸었다.맘에 드는 이미지는 닥치는 대로 섭렵했고 대중적인 이미지와 서구의 명화들을 패러디했다. 

그의 작업이 주는 메시지가 그리 만만찮은 것들임에도 작가의 작업 속에는 심각함을 비트는 장치가 내재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나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이 단순한 재미로 끝나지 않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결코 가벼울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한 작가의 진지한 사색 때문이다. 

방정아는 한국 현대미술이 간과했던 문제들을 고스란히 복원하고 있다.그녀는 자신의 일상을 꾸밈없이 표현한다.가슴이 작은 여자와 근육이 없는 남자의 아픔을 담은 "결핍증에 걸린 사람들"이나 의자에 앉아 벌레를 잡는 순간을 표현한 "집중" 등과 같은 소재들은 한국 현대미술의 무거움을 생각할 때 거의 기적과도 같은 작품들이다."솔직함"은 자신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것이다. 

여성들의 삶과 아픔을 잔잔한 감동으로 표현하고 있는 이 작가의 작품에서 페미니즘이니 여성해방이니 하는 언어들이 얼마나 빈곤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미술을 거창한 그 무엇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이런 전시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이들 작품을 보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미술은 재미있을 수도 있으며 사람을 웃길때도 울릴때도 있다.사실 그래도 아무 일 없지 않는가? (대안공간 "섬"기획동인 이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