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2004.07.06 22:17

월간아트2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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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월간아트2000.6
Name 조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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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아 - 삶에 대한 풍자와 애정 

<길들여지지 않는 것>. 99년에 그린 방정아의 작품 제목이다. 변형 캔버스에 그린 이 노란 바탕의 그림에는 콜드크림을 얼굴에 찍어바르는 여자의 모습이 있고 음식 찌꺼기가 걸려있는 싱크대의 찌꺼기받이를 들어보이는 손이 있다. 콜드크림과 음식 찌꺼기가 묘한 촉감적 연상을 통해 연결되면서 심각한 표정으로 인상을 쓰는 여자의 동작이 왜 멈추었는가를 상상하게 된다. 시침떼고 화면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음식 찌꺼기의 묘사에 피식 황당한 웃음이 나오지만 다음으로는 구덩이에 발을 헛디딘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을 받는다. 어쩌면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것은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라 이처럼 부엌 음식찌꺼기의 불쾌함조차 '길들이지 못하는'어이없는 나약함이 아닐까? 
방정아는 이처럼 너무나 사소하거나 모호해서 묘사하기조차 어려울 것 같은 삶의 조각들을 잘도 짜맞추는 작가이다. 아무도 주목할 것 같지 않은 일상의 순간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는 '바로 그 순간'으로 포착되어 맛깔스러운 옷을 덧입는다. 선풍기 앞에서 빈둥거리다가 문득 바람에 갇혔다는 생각이 들거나(<바람에 갇히다>(98)) 팔에 앉은 파리를 잡으려고 최대한 숨을 죽이거나(<집중>(97)), 벌레를 죽여서 쓰레받기에 담고 나서 심술궂게 외면하거나(<가혹한 응징, 그리고 무관심>) 등등...그의 작품에는 항상 촌철살인적인 유머를 담은 '이야기'가 있다. 문학에 비유하자면 소설이나 시보다는 꽁트에 가깝다. 꽁트는 언뜻 쓰기 쉬워보이지만, 사실 고도의 내공이 요구되는 장르이다. 방정아의 '이야기'는 재능있는 꽁트작가의 글이 그렇듯이 설명적이지 않으면서도 항상 구체적이다. 
방정아의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또 하나의 면모는, 일상의 작은 부분을 포착하는 이 감수성이 자폐적으로 끝나지 않고 항상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접근하는 애정어린 시각과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80년대가 인간의 다양성을 보편의 폭력에 종속시켰다는 회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인간으로부터 아예 떠나려고 했지만, 방정아는 80년대가 간과했던 바로 그 인간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90년대의 많은 작가들이 어두웠던 시대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고 '신세대적으로' 단장하려고 애쓰는 데 비해, 80년대와의 급격한 단절도 경직된 고수도 원하지 않는 그의 작업태도는 큰 장점이다. 80년대의 끝자락에 대학을 다녔지만 그는 개인적인 체험과 감수성이 가진 힘에 계속 신뢰를 보내왔다. 그러나 또한 재기발랄함과 유희 너머에서 삶에 대한 애정어린 성찰을 보여주고 어떤 식으로든 사회적인 삶과의 연결통로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80년대의 긍정적인 성과를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방정아는 회화를 주로 하지만 종이찰흙으로 만든 입체 작업이나 천, 나무 같은 매체를 도입한 작업도 한다. 그는 4번의 개인전을 통해서 조금씩 변화된 모습을 만들어왔는데, 93년의 첫 번째 개인전에서는 보색의 강한 대비가 주종을 이루는 다소 어두운 색채를 통해 주로 서민층 여성들의 삶을 유머와 애정을 섞어 그린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90년대 초반의 작품들은 대체로 이 경향에 속하는데, 연속극을 넋놓고 보거나 양파를 썰며 울거나 애를 들쳐업고 집을 나오거나 등등 주로 정치적, 성적으로 억압된 '아줌마'들의 억눌린 일상이 포착된다. 이 시기의 작품에서 우리는 사회고발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범주화시키기에는 좀더 미묘하고 섬세하다. 또한 이 시기에 <백수 3년>(93) <상념>(93) 등 자기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한 작품도 보이는데, 이러한 자서전적인 경향은 9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더 확대진다. 
96년의 개인전을 기점으로 그는 형광색을 사용할 정도로 밝아진 색채와 좀더 단순화되고 유머러스한 선, 그리고 구체적인 삶의 섬세함을 더욱 미시적으로 포착해 들어가되 역설적으로 알레고리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고도로 압축시킨 묘사법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또한 90년대 후반부터는 작가 자신이 결혼하고 딸 낳고 살면서 체험한 일상이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아기를 얼르고 젖을 물리고 청소를 하는 등 주부로서의 삶을 담는 그의 자서전적인 작품은 예전에 그가 관심을 가졌던 '아줌마'로서의 삶을 자기 자신에게 투영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그리고자 하는 대상에 애정을 가지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함으로써(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도 거리를 유지한다) 그의 그림은 주관적인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객관적인 소통력을 확보한다. 삶에 대한 접근과 거리유지라는 이 이중의 전략은 애정과 풍자라는 두 가지 측면으로 구체화되며, 이것은 방정아의 그림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최근 방정아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하기도 하고, 자연의 이미지를 화면에 꽉 채우는 등 기법상으로도 조금씩 다른 실험을 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은 화면의 서술성은 줄어들지만 이미지의 함축의미는 좀더 복잡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좀더 다채로운 매체가 도입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조선령/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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