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 외할아버지는 '맥가이버'이셨다. 한 장의 그림처럼 기억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의자를 놓고 올라서서 마루 천장의 무언가를 고치시는 모습이다. 외할아버지는 집안의 모든 고장 난 것을 고치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내셨다. 우리 집, 이모 집에도 한 번씩 들러 한참 구석에 박혀 있던 애물단지들을 훌륭한 물건으로 바꿔놓곤 하셨다.


대학 시절 풍물 전수를 위해 어느 농촌마을에 갔을 때 장구를 가르쳐 주신 그곳 할아버지도 팔방미인이셨다. 직업으로 그분을 설명하자면 농부이자, 목수이자, 한의사이자, 역술가이자, 악기연주자이셨다. 그 할아버지의 솜씨로 지은 한옥에서 자면서 외풍으로 고생한 터라 함께 간 친구들이 '아무래도 부실공사인데'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어쨌든 다방면에 관심과 재주를 가진 할아버지에게 모두들 탄성을 보냈다.


자본주의 특징인 분업의 폐해


같은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세분화된 다른 영역에는 무지한 전문가들을 요즘 많이 보게 된다. 마치 선을 그어서 '난 여기까지만 알아야 돼'라고 말하는 듯하다. 바깥에서 보는 일반인의 시선에서는 그저 이상할 따름이다. 사회가 점점 분업화되면서 사람들은 자기 직업 외에는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어 간다.

자기 영역 외에는 점점 무지하게 되면서 우리 생활의 많은 문제들을 각종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상당 부분 맡기고 있다. 그리고 개별적으로는 전체적 맥락을 잊은 채 그야말로 좁은 세계에서 큰일 날 것처럼 허둥거리는 파편화된 삶속에 놓여 있는 것 같다.


자연과 벗하며 자발적인 가난을 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 거의 자급자족의 삶을 지향한다. 먹을 것을 직접 기르거나 채취하고 옷을 지어 입거나 고쳐 입는 등의 삶, 그래서 생활과 세간살이가 더욱 간소해지지만 그의 능력은 점점 확장되어 간다.


호기심이 좀 많은 편인 나로서는 다양한 직업인을 만나면 이것저것 취재하듯 물어보게 된다. 그러다가 내 영역 밖에서 좀 깊이 있게 들어가 공부를 하거나 작업으로 펼치거나 하면 돌아오는 반응이 있다. '그냥 너 하던 것이나 잘해.'


유럽에서 몇 년간 생활한 친구는 미술이라는 단어에 문제제기를 한다. 기술적인 의미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좁은 의미의 미술보다는 '아트(art)'라는 좀 더 넓은 의미로 확장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내 혀에 이미 굳어 버린 미술이라는 단어를 버릴 것을 권한다.


옛날에는 작가라는 사람은 '골방에서 은둔하며 작업에만 몰두해야 해'라는 생각이 지배했고, 그 영향이 아직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소위 말하는 미술계 사람들과 한 번씩 만나다 보면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대화의 폭이 의외로 좁다. 깊이 또한 서로 간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무난한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그에 비해 영화인들은 산업의 측면이 강하지만 다양한 영역의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내는 복합적인 협력의 예술이어서인지 타 장르 예술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그 지식도 꽤 깊은 것을 발견한다. 하기는 이제는 통섭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고 기초학문의 중요성,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많이 높아진 편이다.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진정한 '아트'


내가 얼마 전 알게 된 작은 모임이 있다. 사진·공예·회화·설치작가를 비롯해 미학자, 그리고 여타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약간의 비슷한 취향을 가지고 놀듯이 만나는 커뮤니티이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만나 공부를 하거나 그야말로 다양한 주제로 매달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강연을 연다. 외부 전문가들은 이곳 전문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 간의 영역 확장을 경험한다.


느슨한 구조로 강제성도 없고 그때그때 흘러가듯이 즉흥적인 필요에 의해 내용이 만들어진다. 같이 잼을 만들어보거나, 독립영화를 함께 관람하거나, 스스로 만든 물건을 벼룩시장처럼 팔고 사는 등 삶으로서의 진솔한 만남이 흥미롭게 진행되고 있다. 삶이 밀착된 다양한 소통을 이루는 대안적인 예술의 생산지가 될 것 같은 기대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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