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 꽃 이런 단어들은 곧 사라지고, 져 버릴 것이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이 곧 잘 예찬 된다. 유한성, 강렬하지만 짧은 생명을 예감하면서 느끼는 극심한 안타까움이 그것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그것은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슬픈 아름다움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과는 사뭇 다른 부자연스러운 비극미가 있다.


이윤 앞에서 너무나 위태로운 풍경


#풍경 1


방울방울, 물속에서 기포들이 솟아오른다. 깊지 않은 호수 아래에서 하늘하늘 춤추는 수생식물들이 숨을 쉬는 것이다. 물과 땅이 맞닿은 곳엔 어김없이 풍성한 수초들, 그리고 새들과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고, 지독하게 물은 맑다. 멀리서 세수하고 목욕하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미얀마 인레 호수 보트에서 난 조용히 탄식한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풍경이 아무렇지도 않게 널려있다.

아마 우리나라에도 몇 십 년 전엔 너무도 당연했던 풍경이었을 것이다. 그러했던 당연함을 이젠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이 곳 먼 곳까지 와야 볼 수 있다니. 여태껏 이윤 앞에서 가장 쉽게 무너지는 하위의 가치가 자연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그러해왔다. 말없는 산, 말 못하는 습지들은 속수무책으로 이윤 앞에서 파헤쳐지고 사라졌다. 미얀마의 가슴 저미게 아름다운 풍경도 머지않아 없어질 것 같다. 외국자본이 이미 들어와 있고 그러면 관광지 개발도 본격화 될 것이다. 막 개방의 문이 열린 이 나라에 투자라는 명목으로 무자비한 개발이 벌어질 광경을 미리 예감하는 것은 매우 괴로운 일이다.


#풍경 2


지금은 영화의 전당이 생겨 그곳으로 옮겨졌지만 그 전에는 시네마테크가 수영만 요트경기장 근처에 있었다. 예전에 난 곧잘 그 시네마떼크 옆 산책길을 걷곤 했다. 물론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한 길이었지만 정박한 요트를 멀리서 나마 구경하거나 오랜 시간동안 가꾼 나무들이 길게 이어진 숲을 보는 것은 덤으로 가지는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해운대에서 비교적 시간의 축적을 느낄 수 있는 드문 공간 중의 하나가 아니었다 싶다. 무엇보다 아담하지만 단단한 느낌을 주는 옛 시네마테크 건물은 그만의 독특한 아우라가 있었다. 적지 않은 씨네필의 무한애정을 받던 그곳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풍경 3


춥고 바람 부는 휑한 북항의 어느 하역장에서 정신없이 작업하던 노동자를 생각해본다. 그는 얼핏 눈이 시리게 파란 바다와 노란, 주황, 빨강 색색의 컨테이너 박스를 보았을 것이다. 늘 상 봐 왔던 풍경이지만 고된 작업 사이 그 기억은 강렬했을 것이다. 생사가 걸리는 팀워크에서 필요했을 치열함은 수십 년 동안 그 장소에 서서히 스며들어갔을 것이다. 북항은 근·현대 부산의 매우 중요한 기억들이 저장된 장소이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준비를 하는 그곳은 지금 어떤 맥락으로 계획되고 있을까. 하역동선의 흔적이 남지 않는, 과거 현재 미래가 단절된 채 서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자기 삶의 긍지가 열등감의 공간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을지, 호화로움과 세련됨으로 단장했으나 뭔가 막연한 공간으로 바뀌지는 않을지 염려스럽다. 무엇 때문에 북항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는가, 그 바뀌는 모습은 너무 쉬운 모습이 아닌가. 쉬운 것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것은 대체로 쉽게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일상의 기억을 사라지게 둘 것인가


부산의 아름다움은 국제적 개방성 못지않게 ,진득하게 축적된 불편함 어느 언저리에 있는 지역적 특성을 함께 안고 있기에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껏 부산의 일상의 기억들은 항상 아무렇지도 않게 지워져 왔고 그것을 우리 또한 너무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여 왔다.

일상이 사라지는 것과 견줄만한 무언가가 있는가. 그동안 축적되었던 무엇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곳을 밟고 지나갔을 그 수많은 발자국의 무게와 이야기들이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그저 무력하게 사라지기 직전의 아름다움만을 읊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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